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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바르게 키우기

윤이상 교수님, 엄마 마음에 내 아이는 몇 점?

by 라일락꽃잎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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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이만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무의식 속 마음말이 정말 중요하다. 오늘은 베스트셀러 "엄마 심리 수업"의 저자이신, 정신과 전문의 윤이상 교수님의 강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 마음속에서 나는 내 아이에게 과연 몇 점을 주고 있을까?

1. 7세가 되었는데도 형편없는 딸아이의 그림 실력

 

나는 딸아이를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연주의 유치원을 보냈다. 자연주의 유치원은 하나부터 열까지 일반 유치원과 많이 다르다. 미술시간에도 차분히 앉아서 그림을 그려보자 이런 건 안 한다. 공에 물감을 잔뜩 묻혀 굴려보기, 흰 티셔츠를 여러 가지 형태로 묶어서 천연 재료로 빛깔 물들여보기 식으로, 주로 난장판을 만들며 자유스럽게 모양과 색감과 친해지는 방식이다. (엉망이 된 교실을 다 정리하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다 씻기고 갈아입히시는 유치원 선생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자연주의식 수업... 물론 좋은데,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사람도 그릴 줄 알고, 집과 나무도 그릴 줄 알아야 수업을 따라가기가 수월할 것인데...

초보 엄마라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뭐 화가로 키울 것도 아니고, 자연주의 유치원을 나왔어도 좀 크면 웬만큼은 그리겠지... 나도 그랬던 것 같은데... 별 걱정 안 했다.

하지만 7세가 되었어도 여전히 딸의 그림 실력은 그 자리 그대로였다. 친하게 지내는 다른 유치원을 다니는 친구의 그림을 보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2. 잘하는 것도 많은데 늘 불안하고 성에 차지 않고 걱정이 가득한 엄마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친한 엄마들끼리의 대화 중 무의식적으로 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 "재는 왜 저렇게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줄 몰라. 심각하다 심각해"

이 한마디 하고, 친구 엄마에게 한 시간은 설교를 들었다. (나는 늦게 결혼하고 저는 일찍 결혼했기 때문에 아이들끼리는 친구지만, 엄마들끼리는 10살 차이다)

언니는 항상 지나치게 딸을 낮잡아서 이야기하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잘하는 점, 칭찬할 점도 많은데 그런 건 하나도 인정 안 해주고, 지금 미술이 조금 부족하다고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알고, 지금 그렇게 표현하느냐고 아주 호되게 혼났다.

친구와 미술 실력이 너무 차이가 나는 것도 속상해 죽겠는데 이 엄마는 또 왜 이러는 거야...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친한 사이도 아이고, 힘든 육아의 길을 서로 의지하며 같이 아이들을 키워왔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문제점을 지적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내 목숨보다 나의 딸을 더 사랑한다. (그렇지 않은 엄마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으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고,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다.

내 딸은 어디에 가든, 누구에게든 여러 가지 면에서 칭찬을 많이 듣는 모범적인 스타일의 아이다. 근데 내 마음은 늘 좀 불안하다. 늘 걱정이다. 늘 성에 차지 않는다. 역시... 친구 엄마의 말대로 나의 말과 무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3. 엄마의 무의식 속의 욕망과 불안이 그 원인

 

자식을 방치하거나 학대하여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사랑을 주기는 하는데, 문제가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다. (딱 나인가?)

사실은 그 사랑 속에 독이 들어 있다면? (백설공주의 계모도 아니고 설마 사랑에 독을 넣었을까)

의식으로는 사랑하는데 무의식으로는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있다? (never! 맹세코!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영혼을 다 갈아 바쳐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엄마의 무의식 속에 욕망과 불안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란다. (네... 저는 제 딸이 정말 월등히 잘했으면 좋겠어요. 이 험한 세상에서 뒤처질까 봐 늘 두렵고 불안해요 ㅜㅜ)

아이들은 24시간 엄마의 마음냄새를 맡고 있다. 그리고 세상 밖에 나가서 그 냄새를 풍긴다.

4. 소심함 vs 내성적

 

소심한 아이를 예로 들어보자. 엄마는 아이의 소심함이 걱정이 되어 어떻게든 고쳐보고자 태권도 학원, 스피치 학원까지 보낸다. 잘할 수 있어, 파이팅까지 해 주며, 힘을 실어준다.

그러면서 애가 듣고 있든, 안 듣고 있든 "애가 저리 소심해서 어쩌나"라는 불안과 걱정을 계속 풍긴다. ("재는 왜 저렇게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줄 몰라" 나의 이 말을 혹시 딸아이가 들은 건 아니겠지?)

아이는 "나는 소심해. 나 때문에 엄마는 계속 불안해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입말로는 "내 아이가 당당해졌으면"이라고 말하지만, 마음말로는 "우리 애는 소심해서 걱정이야. 불안해. 큰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는 엄마의 마음말이 깔리게 된다.

엄마라는 존재는 사실 아이를 뱃속에 가지는 순간부터, 내 아이를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엄마가 아이의 안전을 염려하여 끊임없이 불안해하면서 돌보는 것은 아이의 생존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로, 이것은 본능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 문제가 되기도 한다. 평범한 불안인가? 더 깊게 빠지는 불안인가?

이러한 정도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투사"에서 오는 것이다.

본인이 소심했던 엄마는 소심한 사람이 겪는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아이도 그 고통을 겪으면 어떻게 해, 불안해지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소심하지 않다면 남편 때문인가?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 누구를 닮은 건 아닌가? 고민한다) 아이의 소심함은 고작 1인데, 아이에게 엄마의 소심함 9를 뒤집어 씌워 엄마는 아이의 소심함을 10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연히 아이는 매우 소심한 아이가 된다. 내성적인 성향을 약간 부정적으로 보는 단어가 소심함이다.

 

5. 내 마음속의 아이는 과연 몇 점?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며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깨닫고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은 무조건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내가 낳은 아이다. 그 기질이 어떻든, 아이는 시작부터 완전체로 봐야 한다.

태어난 순간 아이는 100점이다. 초1 아이가 점수가 깎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100점짜리 아이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의 아이를 완전체로 보고 있는가? 이미 나 자신의 마음에는 내 아이는 70점 정도밖에 안 된다고 결론짓고, 이래 가지고서야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든 내가 도와줘야지, 어떻게든 내가 커버해 주어야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요즘은 아이가 하나나 둘밖에 안 되는 가정이 많아지다 보니 그 걱정과 불안이 더 심해지고 있단다.

 

내 마음속의 아이를 들여다보자.
"이것이 좀 부족해도 괜찮아 저것이 좀 부족해도 괜찮아.
그래도 너는 100점이야!"
나는 내 아이를 믿고 있는가?
아니면 내 마음속의 아이는
엄마의 도움 없이는 홀로 서지 못 하는 70도 안 되는 아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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