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인 딸아이는 그런대로 성실하고 집중력이 좋으며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스스로 잘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한 편이라 특별히 선행을 시키지 않아도, 사교육을 많이 돌리지 않아도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늘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인 내가 책을 읽어줄 수는 있으나 억지로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책 읽는 기쁨에 흠뻑 빠지게 만들 수 있을까?
1.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한 요즘 아이들
우리 집만 해도 너무 많은 책들이 있다. 각종 인성책, 창작동화, 수학동화, 과학동화 그리고 특히 영어책들이 가장 많다. 거실에도, 아이의 공부방에도 큰 책장들에 책들로 꽉 채워져 있다. 새로운 책을 장만해 줄 때는 기존의 책 중 일부를 처리해서 자리를 만들지 않고서는 들여놓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 많은 책들을 아이가 다 읽었을까? 물론 읽기는 다 읽었다. 본인이 읽었다기보다는 내가 읽어준 책들이 대부분이다. 6세 후반에 한글 읽기를 뗐으니 그때부터 독서의 참맛을 알 수 있도록 유도해주었어야 했는데 아이는, 그리고 내 마음은 언제나 바쁘다.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 2개의 방과 후 교실, 매일 풀어야 하는 수학과 영어 문제들, 그리고 자주 돌아오는 수학 단원 평가와 국어 급수시험 준비를 하고 나면 이미 깊은 밤이다. 그때부터 책 읽기를 시작하면 아이는 읽다 금방 잠이 들어 버린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다.
나는 아이에게 제발 책 좀 읽어라~를 주문하고 한 권을 빼다 준다. 그럼 읽기는 읽는데 별로 흥미가 없어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재미난 어플을 깔아서 동영상을 편집할 때 무한 흥미를 느끼는 그 반짝거림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말했다. 인간은 심심해야 비로소 책을 읽는다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엔 핸드폰은 꿈도 꿀 수 없는 문물이었다. tv도 방영되는 채널 개수가 몇 개 안 되고,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할 때 돌려볼 수 있는 VOD 시스템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때 나는 책 읽기를 자연스럽게 참 좋아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집에는 그다지 많은 책이 없었다. 그냥 언니, 오빠들을 위한 몇 개의 전집 세트들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부족함이 나를 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권 안 되는 책들을 나는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이미 너무 많이 반복해서 읽었기 때문에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서 지겨운 것이 아니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딸아이에게는 너무 많은 책들이 있다. 그리고 즉흥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와 TV에 둘러싸여 있다. 당연히 책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편이 동의만 해 준다면 나는 집에서 TV를 없애고 싶은 심정이다.
2. 우선 흥미를 느끼게 해 주는 책부터 마련해 주자
아이의 성향에 따라 흥미를 느끼는 책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딱딱한 지식책보다는 인성동화나 창작동화를 선호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학습만화라면 더더욱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만화로라도 책을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노력해 보고 정 안 되면 만화를 통해서라도 책을 가까이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계획은 가지고 있다)
뭔가 아이들이 너무 재밌어서 흠뻑 빠질만한 책이 없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던 중, 비룡소의 "나는 책 읽기가 좋아" 시리즈를 발견했다. 마침 친구가 빌려줄 수 있다고 해서 2단계 26권을 빌려왔다. 음... 그런대로 아이가 다른 책보다는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1단계는 글밥이 너무 적은 듯하고 3단계 정도가 적당해 보였는데 지금 나의 목표는 무조건 아이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므로 빡빡한 글자들에 질리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2학년이 보기에는 설렁설렁해 보이는 2단계로 빌려 왔다.
어떠 내용이길래 제목부터가 "나는 책 읽기가 좋아"인지, 아이들이 몰입해서 재밌게 본다는 후기들이 많이 붙어있는 건지 궁금해서 나도 함께 읽어보았다. 여러 가지 주제와 다양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이제 너랑 절교야, 우리 아빠가 제일 세다, 수학은 너무 어려워,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 등의 책은 딸아이와 또래인 친구들의 학교생활과 일상생활, 친구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먼저 마음을 끌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생활 속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 같은 것이 소재라 흥미를 가지게 되고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사고가 자라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접근이 참 마음에 들었다.
3. 나의 버킷 리스트, 나만의 책장 만들기
아이와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버킷 리스트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차 있는 나만의 책장을 가지는 것이었다. 어릴 적 집에 좋아하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에 생기게 된 버킷 리스트일까?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거나 친구에게 빌려 읽고 돌려주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소장해 두고 내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쉽게 꺼낼 수 볼 수 있는 나만의 책장을 가지고 싶었다.
결혼을 했으니 집을 꾸미고 가구를 배치하는 것은 다 나의 소관이고 한 달에 2~3권 정도의 책을 구매하는 것이 그렇게 큰 경제적 부담이 되지도 않을 텐데 나는 10년째 그 꿈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바쁜 생활 속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저 나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에게 많은 책을 읽히고자 온 집안을 아이의 책으로만 도배를 해 놓고 그다지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 때문에 속상해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억지로 아이 보고 읽으라고 책 한 권 던져주고 나는 옆에서 핸드폰 보고 있다. 물론 나는 핸드폰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각종 물품 구매, 남편 회사의 세금계산서 발행, 스케줄표 정리... 핸드폰으로 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책을 읽는 시간이 별도로 주어져서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간에만 책을 읽으려 한다면 바쁜 현대인은 책 한 권 못 읽고 1년이 흘러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늘 내가 읽고 싶은 책 몇 권쯤은 항상 곁에 두고, 짬이 날 때마다 한 페이지씩을 읽더라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리면서 그 내용을 곱씹어 보면 좋을 것이다.
사실 나만의 책장 만들기 말고도 나의 버킷 리스트들은 정말 많이 있다. 나만의 텃밭 가꾸기, 영어 회화 완성하기, 피아노 다시 도전하기, 나만의 레시피 북 만들기 등등...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했다. 내가 좀 더 시간을 쪼개서 아껴 쓰고 생활 속에서 보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을 계획하고 도전하고 성취해 내는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이도 그저 그렇게 세월을 낭비할 것이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를 위해서 우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 어떤 종류가 되었든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적당한 책들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는 일일 것이다. 나와 같은 고민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들이라면 "난 책 읽기가 좋아" 시리즈도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아 추천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중요한 것은 엄마도 엄마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 보여주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어젯밤 당장 그간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 몇 권을 주문했다. 내일이면 도착할 테니 앞으로는 열 일 제쳐놓고 아이가 책을 읽을 때는 나도 같이 책을 읽어야지... 지금은 딸아이는 어린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지만 세월은 금방 흘러 딸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인생과 문학을 논할 날도 곧 올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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